해운대 암소갈비집 방문 솔직후기
우리 집 남자가 출장이 잡혀서 부산에 가야 했다. 내 생일이 겹쳐있어서 함께 다녀왔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예약해서 다녀올까, 아니면 해운대에 그 뭐 고깃집 가고 싶냐고 물어보길래 주저 없이 해운대 암소갈비 가자고 했다. 지독한 고기 러버라며... 그래서 SRT 타고 부산에 함께 다녀왔다. 해운대 암소갈비집은 인터넷이나 방송 매체에서 워낙 많이 접했던 고깃집인 데다가 다들 맛있다고 해서 꼭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악명 높은 웨이팅 때문에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던 곳이다. 대낮부터 웨이팅이 엄청난 고깃집이라니 얼마나 맛있을지 기대를 많이 했다.
렌트를 했지만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서 그런가 우리가 머물렀던 서면에서 해운대까지 차로 가면 대중교통으로 가는 것보다 오래 걸린다고 해서,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다행히 서면역에서 2호선 타면 환승 없이 바로 해운대로 갈 수 있다. 해운대 암소갈비집은 이름은 해운대이지만 카카오 맵 어플로 검색해보면 지하철역은 해운대역보다 다음 역인 중동역이 더 가깝다. 하지만 중동역이나 해운대역이나 그다지 차이 나지 않아서 해운대역에서 내려서 걸어갔다. 대략 10분 정도 걸었다. 해운대 암소갈비집 웨이팅 할까 봐 6시에 거의 맞춰 갔는데 다행히 웨이팅 없이 입장할 수 있었다.
해운대 암소갈비집의 인테리어는 큰 기와집 형태로 방마다 테이블이 몇 개 있고, 방이 따로따로 구분되어 나뉘어 있었다. 각 방마다 서버를 보시는 담당 직원이 있는 시스템으로 보였다. 내가 들어간 방에는 3 테이블이 있었고, 이른 시간에도 이미 두 테이블은 식사를 마무리하고 계셨다. 방으로 들어가려고 신발을 벗기도 전에 담당 서버분께서 "생갈비 떨어졌어요."라고 하신다. 6시밖에 안 된 시간인데 말이다. 하지만 문제없다. 우리는 이미 어제 전화로 생갈비를 예약했기 때문이다.
해운대 암소갈비집의 생갈비는 거의 예약을 해야 먹을 수 있다고 보면 된다. 미리 예약하지 않을 경우, 식당 오픈 시간에 와서 줄 서지 않으면 생갈비는 맛도 못 보는 경우가 흔하다. 해운대 암소갈비집 생갈비 예약 시스템은 방문하기 며칠 전에 미리 전화로 방문할 날짜, 예약하고 싶은 생갈비의 양, 이름을 말하고 생갈비를 예약한다. 좌석 예약이 아닌 생갈비를 예약하는 것이다. 방문하기로 한 날 도착해서 웨이팅이 있을 경우에는 그대로 대기하고, 차례가 되어서 방에 들어갈 때 직원분께 예약자 이름을 말씀드리면 된다. 보통 4일 전에는 전화로 예약을 해야 하나 지금은 코로나로 손님이 많이 줄어서 전날이어도 예약 가능하다고 직원분께 전해 들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해운대 암소갈비의 메인 메뉴는 생갈비, 양념갈비, 불고기다. 생갈비, 양념갈비는 1인분에 180g이고, 갈빗대 2대가 나온다. 가격은 생갈비 48,000원, 양념갈비 42,000원으로 역시 생갈비가 더 비싸다. 뚝배기 된장이 3,000원, 암소갈비집의 유명한 감자사리가 2,000원이다. 그리고 화요 25도의 가격이 눈에 띄었다. 가본 식당들 중 화요 25도를 가장 저렴하게 파는 식당이었다. 그래서 바로 화요 25도를 주문했다. 서버분께서 센스 있게 얼음도 함께 준비해주셨다. 얼음틀로 얼린 얼음이 아니라 각얼음을 내주신 걸 보니 양주를 가져와서 드시는 손님이 많은가 보다.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담당 서버분께서 밑반찬을 가져다주셨다. 해운대 암소갈비집은 개인당 하나씩 밑반찬을 트레이에 담아서 제공해준다. 이렇게 1인당 1 쟁반으로 따로 반찬을 받으니 침 섞일 일이 적어서 훨씬 위생적이고 깔끔하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 최적화된 상차림이다. 한 사람당 하나씩 마늘, 쌈장, 상추 무침, 물김치, 무생채, 미역무침, 묵과 양배추 샐러드가 나온다. 양배추 샐러드와 묵은 기다리는 동안 허기를 달래주고, 물김치는 입맛을 올리기에 좋았다. 반찬이 모자랄 때는 상주하고 계시는 담당 직원분께 말씀드리면 바로 리필해주신다. 반찬이 나오고 나면, 바로 숯과 무쇠판을 올려주신다. 무쇠판에서 해운대 암소갈비집의 오랜 역사가 보인다.
어제 미리 전화 예약으로 주문한 생갈비 2인분이 먼저 나왔다. 생갈비 2인분에 총 갈빗대 4개가 나온다. 고기 육색이 짙고, 지방이 골고루 분포해 있어 생갈비 때깔이 굉장히 좋다. 담당 직원분께서 생갈비를 먹기 좋게 듬성듬성 잘라주시고 불판에 올려주셨다. 해운대 암소갈비만의 특이한 주물판 위 불판 가운데 튀어나온 볼록한 곳에 생갈비를 올려준다. 생갈비를 올리면 숯불로 뜨겁게 달궈진 무쇠판에서 고기가 익고, 불판의 뚫린 구멍에서 올라온 숯불향이 고기에 밴다. 소갈비의 기름은 아래 오목한 홈으로 빠진다.
맛있게 구워진 생갈비를 해운대 암소갈비집만의 특제 소금에 찍어 먹어본다. 해운대 암소갈비집 소금은 고운 고춧가루와 소금을 섞어 참기름에 빠르게 볶아낸 것이라고 한다. 갈비의 육향과 숯불의 향이 강하다 보니 소금의 맛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고소해서 갈비와 잘 어울렸다. 생갈비는 육향이 강하고 맛있었다. 기름의 고소함은 조금 적다고 느꼈다. 맛있는 생갈비였지만 기대보다 별로다. 이렇게나 힘들게 먹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해운대 암소갈비에서 먹고 난 뒤에도 나만의 생갈비 원픽은 여전히 안동에서 먹은 생갈비다. 반찬이 이것저것 있었지만 고기 먹으면서 한입 씩 먹을 만한 반찬은 상추 무침밖에 없는 점도 좀 아쉬웠다.
생갈비 2인분은 금방 사라졌다. 360g이지만 뼈 무게 포함이라 실제로 입에 들어간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어서 주문한 양념갈비 2인분이 나왔다. 역시 360g에 뼈 4대가 나왔다. 심지어 양념 갈비는 양념을 포함한 무게라서 양은 더 적다고 보면 된다. 담당 직원분이 바쁘시지도 않은데 고기만 내주고 이번엔 안 잘라주시고 갔다. 양념갈비는 원래 안 잘라주시고 통째로 올려서 구워 먹는 건가 싶어서 내가 직접 잘랐다. 하지만 자르고 있는 도중에 바로 옆 테이블에 와서 양념 갈비도 다 잘라주신다. 직원이 내키는 대로 제공되는 서비스인가 보다. 양념 갈비 전용 소스도 안 가져다주셔서 따로 요청드렸다. 담당하고 계신 테이블은 2 테이블밖에 없었는데 치우느라 정신없으셔서 먹고 있는 테이블엔 신경을 안 쓰신다.
덜어다 주신 양념 갈비 소스에 잘 익은 양념 소갈비를 찍어 먹었다. 아, 솔직히 찍어먹는 소스가 너무 맛이 없었다. 보기엔 맛있어 보였는데 감칠맛은 전무하고, 달기는 엄청 달아서 입맛을 버렸다. 바로 화요로 입가심을 했다. 양념 소스가 맛없는 걸 알고 안 내주신 걸 우리가 괜히 달라고 한 건가 보다. 역시 센스 있으시다. 양념 갈비 소스는 한 번 먹고는 제쳐두고, 소금에 찍어먹었다. 소금에 찍어먹으니 훨씬 맛이 좋다. 양념 갈비 자체의 양념이 강한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냥 양념 갈비만 먹으면 심심해서 소금에 안 찍어먹을 수 없었다. 생갈비보다 양념갈비가 더 낫다고 한 리뷰도 꽤 많았다. 그래서 생갈비 먹고 조금 실망했지만 명성을 가진 해운대 암소갈비의 양념갈비도 믿고 먹어봤는데 내 입맛에는 생갈비가 훨씬 맛있었고, 양념갈비는 그냥 어느 정도 하는 소 갈빗집 가서 시켜도 먹을 수 있는 맛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우리 집 근처에 있는 갈빗집의 미국산 양념 소갈비가 더 맛있다.
우리는 불판이 쉽게 타서 좀 자주 바꿨는데 불판에 고기 올릴 때 틈을 주면 불판이 잘 탄다고 한다. 그래서 고기를 올릴 때 쉬면 안 된다. 불판을 태운다고 또 한소리 들을까봐 천천히 먹는 스타일인데 빠르게 고기를 올렸다. 갈비뼈에선 이미 고기가 야무지게 다 발라져 있었지만 그래도 배가 허전하므로 구워본다. 테이블에는 갱지가 냅킨 통에 가지런히 놓여있는데 어디에 사용하는 건가 봤더니 이렇게 뼈를 잡고 먹을 때 열과 기름에서 손을 보호하는 용도였다. 역시 먹을 건 없어서 한입 대고 이 나갈까 봐 조용히 내려놨다. 뼈를 굽고 나중에 알았는데 메뉴판의 뚝배기 된장찌개를 주문하면 남은 뼈를 가져다 된장찌개에 넣고 끓여주시는 거라고 한다. 그럴 줄 알았으면 뼈를 굽지 않았을 텐데 미리 설명 좀 해주시면 얼마나 좋았으려나, 미리 알려주시는데 1분도 걸리지 않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해운대 암소갈비집에서 갈빗대를 넣고 끓인 뚝배기 된장을 드실 분은 주문과 동시에 말씀드리는 편이 좋겠다.
양념갈비 마지막 판을 앞두고, 감자 사리를 추가 주문했다. 해운대 암소갈비집 감자사리가 그렇게나 맛있다고 유명해서 배불러도 하나만 먹지 말고, 두 개 먹으라는 리뷰대로 감자사리를 2개 주문했다. 직원분께서 가져오신 감자사리를 불판의 오목하게 들어가 있는 부분에 부어주신다. 국물까지 자작하게 부어서 다 졸아들 때까지 한참 끓여준다. 한우 소갈비에서 빠진 기름과 감자 사리의 육수가 함께 끓으면서 감자 사리에 촉촉하게 배어들고 있다. 국물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먹으면 거의 아무 맛도 안 나고, 국물이 거의 없다시피 할 때까지 끓여서 먹어야 맛이 좀 난다. 처음에는 좀 밍밍한 맛이어서 역시나 좀 실망스러웠는데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맛있다. 그렇게나 끓였는데도 면이 불은 느낌이 아니라 탱탱하고 고소하다. 마지막에 불판에 누룽지가 생기는 데 그걸 박박 긁어먹는 게 그렇게 맛있다고 한다. 근데 무쇠판에 달라붙은 감자사리 누룽지를 긁으려면 힘이 꽤 필요하고 번거로워서 조금 긁어먹다가 포기했다. 유명한 암소갈비집 감자 사리 먹어본 소감은 괜찮게 먹기는 했지만 감자사리 먹으려고 다시 가고 싶다는 마음은 안 생긴다.
화요 다 먹고 시킨 소주가 남아서 안주로 먹을 뚝배기 된장 시키려고 했지만 뼈를 넣어 끓여야 한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못 시켰다. 대신 공깃밥을 주문하면 된장찌개가 나온다고 해서 공깃밥을 하나 주문했다. 반찬으로 김치, 오징어젓, 콩나물 무침을 가져다주셨다. 콩나물 무침은 소금과 마늘이 아닌 간장으로 무쳐져서 새로운 맛이었다. 그렇다고 맛있다는 건 아니다. 먹던 대로 먹는 콩나물 무침이 좋다. 김치는 해운대 암소갈비집에서 국내산 재료로 직접 담근 김치라고 한다. 김치 맛은 괜찮았다.
직원이 이 세 가지 반찬을 가져다주면서 자기네는 공깃밥 하나 시켜도 이렇게 반찬을 드린다며 대단한 걸 제공한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유머로 말씀하신 건지는 모르겠는데 웃기려고 하신거면 성공이다. 참... 어이가 없어서 웃겼다. 단가가 이렇게 비싼 고깃집에서 이 정도는 밥 안 시켜도 기본으로 제공될 만한 반찬이다. 자부심 느끼실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오히려 괜찮았던 건 공깃밥 하나 시켜도 제대로 된 된장찌개가 나왔다는 점이다. 큰 솥에서 한 가득 끓여서 뚝배기에 덜어 나온 것 같다. 그래서 맛이 진하지만 텁텁함 없이 개운했다. 뚝배기 된장은 얼마나 더 맛있었을까, 못 먹어서 아쉽다. 그래도 기본 된장찌개에 두부와 감자가 듬뿍 들어있어서 찌개 국물과 함께 밥에 비벼서 김치 한 점 올려 먹으니 맛있었다. 그리고 후식으로 귤을 주셔서 감사히 먹고 나왔다.
해운대 암소갈비는 방으로 구분이 되고, 좌식에 뜨뜻한 바닥까지 어른들이 굉장히 좋아하실 스타일이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입식이 더 편한 건 어쩔 수 없다. 좌식으로 앉아서 먹다 보면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 그리고 해운대 암소갈비는 후드(덕트)가 없다. 그래서 추운 겨울이지만 방마다 다 문이 열려있는 채로 운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옷에 고기 기름 냄새 밸 건 각오하고 가야 한다. 기름이 많이 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벗어놓은 패딩에까지 기름이 튀었다. 노력해봤지만 기름때가 도저히 지워지지가 않는다. 벽 한편에라도 옷을 걸어둘 수 있게 마련해주시면 좋겠다.
해운대 암소갈비집은 아쉬움이 많다. 둘이서 20만 원이 넘는 가격을 계산하고 왔는데 맛과 서비스가 그 정도 따라가는지 도통 모르겠다. 해운대 암소갈비는 역사가 오래되어서 옛날부터 찾던 어른들이 자녀들을 데려오고, 자녀들이 또 자녀를 데려왔을 테고, 회식이나 모임 등으로 손님을 꽉 채웠을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맛집으로 소문이 나고, 그 소문에 궁금해져서 나처럼 방문하는 이들이 많아 여전히 문전성시를 누리고 있는 것 같다. 암소갈비집의 메뉴 가격은 고급 식당과 맞먹는데 맛과 서비스도 그만큼 맞춰가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방에는 담당 직원이 상주해계시는데 고기를 구워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계속해서 손님들을 케어하는 것도 아니다. 직원의 서비스가 일정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서비스받지 못한 손님들은 기분 상할 수 있다. 직원들이 워낙 많으니 일일이 케어가 잘 안 되겠지만 직원별로 격차가 있는 건 결국 그 가게의 책임이라고 본다. 어른들 모시고 가기에 좋아 보이는 식당인데 서비스가 영 별로여서 어른들 모시고 가기에도 민망할 것 같다. 누가 사준다고 하면 따라가서 얻어먹을 맛이긴 하지만 내 돈으로 재방문할 의사는 없다. 발품 팔아서라도 같은 가격에 더 맛있는 고기를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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