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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숙성도 :: 제주도에서 흑돼지 먹으러 딱 한 곳 가야한다면

by 리베끼안티 2021. 1. 20.

제주도 숙성도 노형본점 솔직후기

제주 숙성도

제주도에서 요즘 아주 핫한 고깃집 '숙성도'에 가보았다. 오로지 숙성도 하나 가려고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호텔을 예약했다. 가보기도 전에 1~2시간의 웨이팅은 기본이라는 어마어마한 소문을 들었다. 검색해보니 '테이블링'이라는 어플로 웨이팅을 할 수 있는 좋은 정보가 있었다. 테이블링 어플은 처음 이용하는 건 아니고 각지 유명한 맛집들을 방문할 때 몇 번 사용해봤는데 진짜 괜찮은 어플이라고 생각했다. 예약 시스템과는 좀 다르게 당일에 매장이 오픈하고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면 원격 줄 서기를 눌러서 다음 대기 번호에 포함되는 시스템이다.

테이블링 어플의 원격 줄서기 기능을 이용하면 대략적인 대기 시간도 알려주고 앞에 1~2테이블 남았을 때 매장에 도착해서 대기하면 되기때문에 마냥 기다리며 낭비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이제 제주도의 가장 핫한 돈까스 집 '연돈'도 테이블링을 이용해 줄을 설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숙성도에 방문한 날은 공휴일이었고, 밥 먹기 어정쩡한 시각인 4시 정도에 어플을 켰는데 벌써 3테이블이 대기 중이었다. 근처 호텔에서 5시에 원격 줄서기를 신청했는데 몇 달 만에 이용해 본 테이블링 원격 줄서기 시스템이 좀 바뀌어서 어플로 원격 줄서기를 신청해도 방문해서 확약을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설렁설렁 걸어갔더니 테이블이 한 바퀴 돌고 나올 시간이었는지 앞에 3~4 테이블이 금방 빠져서 그다지 오래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제주시 숙성도 본점

다 먹고 7시 조금 넘어서 나올 때 찍은 사진인데 웨이팅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숙성도 간판은 욕실 같은 느낌을 주는 짙은 녹색의 타일과 금빛 글자로 빛을 내고 있었다. 외부에는 '냉수침지 숙성'이라 쓰여있는 수조에서 고기들이 워터 에이징 되고 있었다. 소비자가 먹을 고기의 숙성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알려주려는 의도는 좋지만 식욕이 돌 만한 그림은 아니라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

제주 숙성도 본점

매장에 입장하자마자 바로바로 테이블이 세팅된다. 짱짱한 숯이 들어오고, 숙성도에서 자체 제작한 불판이 올려진다. 불판 주위로는 멜젓, 갈치속젓, 청양고추, 씻은 묵은지와 와사비를 올려주는데 청양고추 안에 국물은 뭔가 해서 여쭤보니 불판 주위에 두었을 때 고추가 타기 때문에 멜젓을 일부 부어주는 거라고 하셨다. 기타 밑반찬은 양파 장아찌, 깻잎 절임, 고사리 장아찌와 쌈채소, 쌈장, 마늘, 소금이 나온다. 그리고 김치찌개가 기본 서비스로 나오는데 김치찌개 역시 밑반찬과 동시에 서브된다. 고기가 다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요기하기에 좋겠다. 하지만 고기를 더 많이 맛있게 먹어야 하니 옆으로 잠시 치워둔다.

제주 숙성도 노형본점

제주 숙성도는 난축맛돈이라는 돼지 품종을 판매한다. 난축맛돈은 제주 재래 흑돼지와 유럽의 랜드레이스 돼지 개량종을 교배하여 개발된 품종의 돼지이다. 제주 토종 흑돼지의 낮은 생산성을 보완하기 위해 개량된 돼지 품종이라고 한다. 또한 근육 내 지방 함량, 적색육이 일반 돼지에 비해 3배가 높아서 부드러우면서 쫄깃하고, 육즙이 풍부하며 고소한 맛을 낸다고 한다. 솔직히 맛집이라 알려진 많은 고깃집에 가서 적잖이 실망을 했기 때문에 숙성도 또한 몇 달째 계속 먹어보고는 싶었지만 이때까지도 큰 기대는 안 했다.

벽면에는 숙성도 200% 즐기는 법이 적혀 있다. 1) 고기에 고사리 장아찌를 얹고, 명란젓을 조금 올려 먹는다. 2) 고기에 생 와사비나 갈치 속젓을 올리고 깻잎지에 싸서 먹는다. 3) 씻은 묵은지와 멜젓을 같이 곁들여 먹는다. 안내해 준 맛있게 먹는 방법 중 생 와사비나 갈치 속젓은 많은 고깃집에서 접할 수 있고, 익히 증명된 방법이다. 1번처럼 명란젓을 내주는 고깃집은 거의 없는데 분당 수내동에 명란젓을 내주고 있는 고깃집이 있어서 이미 먹어본 적은 있다. 양념된 명란젓과 고기를 함께 먹으면 맛이 괜찮아서 단골들 선호도가 높고, 나 역시 괜찮게 먹었다. 근데 개인적으로는 그리 생각나고 찾아먹고 싶은 맛은 아니었다.

제주 숙성도 메뉴판

메뉴판 가장 상위에 있는 교차 숙성 흑돼지는 흑돼지의 앞다리살 부위이다. 교차 숙성 흑돼지란 워터 에이징으로 1차 숙성된 흑돼지를 드라이에이징으로 2차 숙성하는 방식으로 교차 숙성한 것인데 기름이 적어 구이 고깃집에서는 잘 팔지 않는 앞다리살을 자신 있게 내놓은 것이다. 720 숙성은 교차 숙성을 30일간 거쳤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사장님의 노력이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돼지고기를 30일간 숙성시킨다니 들어보지도 못한 이야기다.

흑돼지 앞다리살, 삼겹살, 목살, 뼈 목살, 뼈 등심, 통 항정, 껍데기 등 고기 메뉴가 여러 가지 있다. 후식 메뉴 또한 김치찌개를 포함해서 4가지나 된다. 숙성도 수제 맥주도 있고, 클라우드 생맥주도 판매하고 계신다. 다양한 메인 메뉴와 식사 메뉴, 주류 종류도 많은 거 보니 이 가게 진짜 장사 잘 되나 보다. 부럽다.

제주 숙성도 흑돼지

뼈 등심이 참 궁금했는데 기름이 많은 부위라고 하셔서 이따 먹어보기로 하고, 가장 먼저 교차 숙성 흑돼지와 720 흑돼지 1%를 하나씩 주문했다. 하나씩 주문할 수 있는 점 또한 좋다. 아무래도 제주도는 여행객이 많이 오니까 자주 와서 이것저것 맛보지 못하고 하나씩 다 먹어보고 싶은 손님들이 있을 텐데 나 또한 사장님의 배려에 감사하다. 직원분께서 교차 숙성 흑돼지(앞다리살)와 흑돼지 1%(목살)을 가져오셔서 바로 불판 위로 올려 주셨다. 씻은 묵은지도 불판에 올리고, 명란젓을 가져오셔서 가위로 조지 듯 잘게 다져주셨다. 고기 또한 조용하고 빠른 손놀림으로 맛있게 구워주셨다.

제주 숙성도 교차숙성흑돼지

숯이 짱짱하니 코팅된 무쇠 판에 열이 뜨겁게 달아 올라 고온에서 빠른 시간에 맛있게 구워진 교차 숙성 흑돼지이다. 직원분께서 다 구워지니 고기에 고사리 장아찌와 명란젓, 와사비를 조금 올려서 개인 접시에 조용히 놔주셨다. 남편 접시에는 구워진 목살을 백김치에 싸서 놓아주셨다. 안내되어 있는 것처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대로 만들어 주셔서 냉큼 먹어보았다. 약간의 퍽퍽함은 있었지만 앞다리살인지 모르고 먹으면 목살로 알고 먹을 수도 있을 정도로 부드럽고, 육즙도 있어서 맛있게 먹었다. 

한입 먹자마자 바로 한라산 21도를 주문했다. 숙성도에서 주문해서 제작한 것인지 한라산 소주 매출이 워낙 잘 나와서 받으신 건지 한라산에 숙성도 로고까지 그려져 있는 종이가 붙어 나왔다.

제주 숙성도 흑돼지1%

새송이 버섯도 통으로 하나 올려 주시고, 다 익은 목살과 앞다리살을 가지런히 놓아주셨다. 1%의 가장 좋은 목살 부위만을 골라 720시간 숙성했다는 목살도 먹어본다. 확실히 앞다리살보다는 목살이 훨씬 맛있다. 원래 씻은 묵은지는 구워 먹는 것보다 본래의 시원한 맛으로 먹는 걸 좋아했는데 숙성도에서 구워 준 묵은지에 싸서 먹어보니 그냥 먹는 것보다 더 맛있어서 구운 묵은지에 많이 싸 먹었다.

제주 숙성도 뼈등심

바로 이어서 960 숙성 뼈 등심을 주문했다. 뼈 무게 포함 300g에 25,000원이고 하루에 50인분 한정으로 판매하고 있다. 6시 조금 넘은 시간에 주문한 건데 한정 판매라 일찍 안 시켜서 품절되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남아있어서 맛볼 수 있었다. 뼈등심은 돼지의 등심, 가브리살과 삼겹살 부위를 동시에 맛 볼 수 있다. 토마호크 스테이크가 생각나는 비주얼이다. 역시 직원분께서 구워주시는데 가위로 뼈와 살 부분을 분리하고 통째로 굽다가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주신다.

제주 숙성도 뼈등심

돼지의 등심 부위는 지방이 거의 없어 보통 돈까스나 잡채 등 부재료로 많이 사용한다. 40일이나 숙성한 숙성도 뼈 등심의 등심 부위는 구워먹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퍽퍽함 없이 부드럽게 잘 씹혔다. 숙성의 힘이 이렇게나 크다. 대신 가브리, 삼겹살 부위는 좀 느끼하다고 느낄 수 있다. 워낙 기름이 많은 부위다 보니 씹어보면 육즙과 기름이 함께 터져 나온다. 나는 기름진 부위 좋아해서 괜찮았는데 안심, 목살 같이 담백한 부위 좋아하는 우리 집 남자는 좀 기름지다고 했다. 뼈등심에서 처음에 분리했던 갈비 부위가 다 구워지면 직원분께서 갈비뼈에 붙어있는 살을 세심하게 분리해주신다. 뼈에 붙어있는 살 역시 씹는 재미가 있어서 술 안주로 맛있게 먹었다.

제주 숙성도 삼겹살

뼈등심 다 먹고 추가로 주문한 720흑 삼겹이다. 뼈 목살을 시켜볼 까 했는데 이미 최상이라는 1% 목살 맛을 봤는데 뼈 목살로는 만족 못할 것 같아서 삼겹살로 주문했다. 삼겹살 또한 지방이 풍부해서 육즙과 기름이 동시에 터지는 맛이 일품이었다. 근데 배가 어느 정도 찬 상태에서 마지막에 먹은 거라 나 역시 좀 느끼했다. 아무래도 난축맛돈이 일반 돼지보다 근내 지방량이 3배나 많다고 하니 더 기름진 맛일 수밖에 없겠다. 그렇다면 역시 목살이 가장 맛있을 수 밖에 없는 품종이 아닐까 싶다.

제주 숙성도

그렇다고 가장 기름진 삼겹살을 맨 처음에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느끼함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시키는 건 배가 찬 상태에서도 느끼한 삼겹살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쌀밥이랑 같이 먹는 것이다. 쌀밥에 와사비 조금 얹고, 삼겹살에 쌈장이나 소금을 살짝 찍어서 같이 올려 먹으면 삼겹살의 기름을 쌀밥의 담백함으로 융화시켜 씹을수록 고소하고 달달해져서 참 맛있다. 원래 고기 먹을 때 밥 안 먹고 고기만 먹는 스타일인데 일부러 이렇게 먹고 싶어서 한 번 씩 시켜먹는다. 개인적으로 쌀밥이랑 가장 잘 어울리는 고기는 삼겹살이다. 삼겹살 지방의 고소함과 쌀밥의 담백, 달달함이 참 잘 어울린다.

제주 숙성도 김치찌개

한두 점 정도는 삼겹살과 쌀밥을 같이 먹고, 남은 공깃밥은 숙성도의 서비스 메뉴 김치찌개와 먹으면 딱이다. 오래 끓여낸 찌개의 비주얼인데 과하지는 않아서 국물이 텁텁하지 않고, 그렇다고 김칫국 스타일도 아닌 얼큰하고 진한 김치찌개였다. 서비스 메뉴인데도 손질하고 남은 고기를 듬뿍 넣어주셔서 고기가 섭섭지 않게 들어있고, 두부도 넣어주셔서 아주 땡큐다. 덕분에 남은 술 마시는 동안 안주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숙성도 근처에 숙소 잡아놓고 바로 다녀온 보람이 있었다. 사실 이 날 점심 먹은 게 완전히 소화되지 않았지만 길게 웨이팅 하기 싫어서 그리 배고프지도 않은데 좀 일찍 줄 서서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맛있게 고기를 4인분이나 먹고 김치찌개까지 클리어하고 나왔다. 배고픈 상태로 갔으면 5~6인분은 쉽게 먹었을 것 같은 맛이었다. 내부에 가득 채워진 숙성 냉장고를 보면서 사장님이 얼마나 노력하고 만드신 가게인지 눈에 선했다. 사장님의 연구와 노력 덕분에 정말 맛있는 고기를 먹어서 감사하고 행복했다. 

조금 아쉬운 점은 흑돼지라 비싼 건 알지만 정말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리고 중국인 직원분들이 참 하나같이 안 친절하시다. 한국인 직원분들은 즐겁게 일하시던데 퉁명스러운 모습은 좀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소금 좀 듬뿍 주셨으면 좋겠다. 손님들이 소금을 다 남기고 가시나? 한 테이블 당 소금도 한 종지밖에 안 주시는데 그것마저 엄청 소량이라서 소금 계속 리필해달라고 하기도 민망했다. 리필할 때마다 너무 조금 주셨다. 맛있게 잘 구워진 고기는 소금만 찍어먹어도 맛있는 데 아껴먹어야 하나 싶었다.

개인 취향으로는 원래 숯이나 연탄 직화로 구워 먹는 고기 맛을 제일 좋아한다. 제주도 가면 돈사돈 노형본점이 제일이었는데 자칫하면 순위가 달라질 것 같다. 제주도에서 돈사돈이랑 숙성도 둘 중 한 곳만 가야 한다면 지금의 마음으로는 숙성도에 갈 것 같다. 숙성도는 직화구이도 아닌데 진짜 다녀와서 계속 생각나는 맛이어서 제주도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게 너무 아쉽다. 한 번만 먹고 온 건 더 아쉽다. 숙성도만의 숙성 고기와 자체 제작한 불판 때문에 아무 곳에나 가서 먹을 수 있는 맛이 아니다. 비슷하게라도 하는 동네 고깃집이 있나 수소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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