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성원식품
금요일 저녁 친구 만나러 오랜만에 강북에 다녀왔다. 을지로 노포만이 내는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 오늘은 을지로에서 만나기로 했다. 검색하다 보니 을지로에 LA갈비 골목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둘 다 고기 좋아하니 좋은 선택. 을지로 인쇄골목에서 충무로 인현시장 방향으로 걷다 보면 나오는 을지로 성원식당을 방문했다.
걷다 보니 을지로 유명한 맛집인 산수갑산 근처에 있었다. 성원식품 들어가기 전에 친구 기다리면서 골목 구경하다 보니 엄청난 웨이팅이 있길래 뭐지 하고 가서 보니까 산수갑산이 있었다. 금요일 이른 저녁이었는데 엄청난 웨이팅이었다. 순대 안 먹고 싶어서 다행이다. 산수갑산을 지나쳐 나와 친구는 휘황 찬란 보름달이 뜬 날을 기념하며 정월대보름 추석 때 못 먹은 LA갈비를 먹기 위해 인현동 LA갈비골목으로 걸어갔다. 그래 봤자 la갈비 파는 가게는 3~4개뿐이긴 했다.
LA갈비 골목을 대표하는 세 식당이다. LA 갈비를 숯불에 구워주는 시골집, 연탄불에 구워주는 용강 식당, 그리고 우리가 간 성원식품(성원식당)이다. 비슷비슷하다기에 취향에 맞춰서 가면 되겠다. 금요일 저녁에 방문한 세 식당 모두 테이블이 거의 다 차 있었다. 매장이 워낙 작아서 테이블이 몇 개 없다. 다른 두 가게는 내부가 너무 좁아 보여서 좌석의 여유가 있는 별관이 있는 성원식당으로 들어갔다. 을지로 성원 식품은 '식객 허영만의 백반 기행'에 출연한 곳이라고 한다.
LA갈비 2인분을 먼저 주문했다. 주문하자마자 밑반찬부터 나온다. 가격도 매우 저렴한데 인심도 좋다. LA갈비에 곁들여먹을 간장소스가 뿌려진 양파와 시래깃국도 나왔다.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금방 나왔다. 을지로 성원식당의 LA갈비 2인분이다. 양을 보아하니 먹고 추가로 시켜야겠다 싶었는데 회포 푸느라 술안주로 천천히 먹다 보니 양이 딱 적당했다. 한 상 찍어보니 잘 차려진 밥상이다. 술 마시러 왔는데 밥 먹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래서 청국장도 하나 시켰다. 친구가 먹고 싶어 해서 주문한 청국장도 금방 나왔다. 청국장은 원래 점심 메뉴인데 저녁에도 말씀드리면 기꺼이 준비해주신다. 청국장은 내 취향은 아니라 몇 번 떠먹고 말았다. 청국장 안 즐기는 내 기준으로는 다행히 냄새가 강하지 않았고, 맛은 다른 거 안 섞인 딱 기본 청국장 맛이었다.
을지로 노포 분위기 느끼고 싶어서 성원식품으로 갔던 건데 딱히 그런 느낌은 없었다. 다 먹고 나오기 전에 화장실 가려고 올라간 2층이 좀 더 노포 느낌이 잘 나는데 계단이 무지 가파르다. 술 마시고 왔다 갔다 하면 꽤 위험할 것 같다. 노포 분위기 느끼고 싶으면 별관이 아니라 시골집/용강식당/성원식당의 본관 같은 좁디좁은 자리에 앉아서 술 들이붓는 분위기로 먹어야 제대로 일 듯하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이라 자제했다.
종로 서울식품
을지로까지 왔는데 한 군데에서 비비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1차 을지로 성원 식품에서 간단히 반주하고 나와서 돌아다녀보니 가고 싶은 을지로 힙한 곳은 다 만석에다 웨이팅도 길었다. 또 다른 노포 없나 생각하다가 이름만 외워뒀던 종로 서울식품을 찾아왔다. 종로 서울식품은 가맥집(가게 맥주집) 답게 1층엔 과자, 담배, 기타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었다. 와, 요즘에도 판매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먹던 음료수 쌕쌕도 있다. 서울식품 외부 길거리에도 테이블이 꽤 놓여있었고,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야외에서 술을 먹고 있었다.
종로 서울식품은 외부 2층으로 연결된 계단으로 올라오면 작은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2층 출입문 옆에는 술잔, 앞접시, 수저, 김치 등 필요한 건 다 준비되어 있어서 셀프로 이용하면 된다. 위생은 장담 못한다. 서울식품은 가맥집인데 안주들이 참 다양하다. 테이블마다 하나씩은 무조건 있는 햄 후라이(스팸 후라이)와 짜파게티를 우리도 주문해봤다. 지금 보니 굴 철이라서 굴도 판매하고 계셨다. 서울식품 마감시간은 빠른 편이다. 오후 10시 30분이면 영업이 끝난다. 가맥집이라서 메뉴 가격은 확실히 저렴한 편이다. 생맥주도 판매하시고, 막걸리와 소주 가격은 2,500원 밖에 안 한다.
소주도 냉장고에서 셀프로 꺼내오면 된다. 소주 두세 잔 하고 있으니 햄 후라이와 짜파게티가 금방 나왔다. 짜파게티는 메뉴판에는 없지만 어떻게 알고 다들 먹고 있다. 물론 우리 테이블도 빠질 수 없다. 다른 테이블은 짜파게티에 계란 프라이 얹어 나오던데 우리 테이블은 안 올려주셨다. 햄 후라이를 같이 시켜서 그런가 보다. 뭐지. 그냥 내가 올려 먹었다. 짜파게티 아무리 맛있어도 김치 없이는 한 입 밖에 못 먹어서 옆에 선반에서 김치도 떠왔다. 중국산 김치인 게 뻔하지만 맛있게 잘 익었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스팸후라이나 짜파게티랑 술 먹으니 술이 잘 안 넘어간다. 어렸을 때 호프집에서 먹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찌개나 제육볶음 시켜 먹었으면 더 맛있게 먹었을 것 같다. 배가 차서 못 시켜서 아쉬웠다.
어느새 10시 반이 되어서 마감시간이라고 나가 달라 해서 떠밀려 나왔다. 몰랐는데 지금 사진으로 보니 그릇도 내가 정리하고 가야 하는구나. 그럼 테이블은 누가 닦는 걸까? 흠, 전주 가맥집 좋아해서 종로 서울식품도 찾아봤는데 재방문 의사는 없다. 집에서 가까워도 안 갈 것 같다.
을지로 타이거디스코 바이닐 바
어정쩡한 시간이어서 헤어지기 아쉬워 친구가 타이거 디스코로 데려가 주었다. 을지로 노포들에 실망한 나를 다시 을지로로 불러들일 타이거 디스코다. 여기는 을지로 가면 꼭 또 갈 곳이다. 영업시간 짧은 게 좀 아쉽지만 말이다. 친구가 건물 외부에 아무 간판도 없는 쓰러져 갈 것 같은 건물로 들어간다. 계단은 한 사람 씩 일렬로 오르고 내려가야 하는 사이즈였다. 엄청 좁다. 이 사진 찍을 때까지도 뭐 요즘 유행하는 곳들처럼 뻔하겠지~하고 별 기대 없었다.
안에 들어가자마자 나 너무 만족했다. 을지로 타이거 디스코는 LP를 틀어주는 바이닐(vinyl) 바인데 3~4평 정도 되는 사이즈의 이 공간이 너무 멋있다. 대략 방 한 칸 정도 되는 공간이라 다찌로 8석 정도 있었다. 좌석이 꽉 차서 앉을자리가 없으면 뒤에 얕고 긴 바 테이블이 있어서 서서 음악과 술을 즐길 수 있다. 타이거디스코 바 안 쪽의 반은 LP로 가득 찼다. 가운데 선반엔 흘러나오고 있는 LP의 앨범 커버를 올려놓으신다.
사실 뭐 그리 대단한 게 있는 건 아닌데 그냥 타이거디스코 이 작은 매장의 분위기 자체가 가게가 아니고, 옛날 홍콩 영화 세트장 방 한편 같다. 사장님 스타일이 완전 복고풍이신 데다가 이 공간과 분위기가 찰떡이어서 더 영화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타이거 디스코의 바텐더이자 DJ이신 타이거디스코 사장님, 알고 보니 가게명과 같이 타이거 디스코라고 실제 활동하시는 DJ 셨다. 다녀와서 검색해보니 이 레트로 스타일로 지금껏 쭉 고집해오신 분인 듯하다. 그래서 이렇게 잘 녹여내실 수 있었겠지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이소라 언니의 눈썹달 앨범도 틀어주셨는데 시티팝을 주로 트시는 듯하다. 공간이 협소하고 분위기가 조용하게 즐기는 곳이다 보니 혼자 오시는 손님들도 계셨다. 나도 집 가까운 곳이었으면 음악 들으러 혼자서 정말 자주 갔을 것 같다. 술의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지만 가격도 저렴한 편이어서 부담이 없다. 대신 커버 차지가 4천 원 있다. 이 정도면 커피 한잔 값인데 값을 치를 만하다. 사진 찍고 지금 보니까 1인 또는 2인만 입장 가능하다. 그래서 더욱 조용하고,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것 같다. 안내사항은 꼭 숙지하고 가는 게 좋겠다. 인당 4천 원의 커버 차지가 있고, 만취해서 와서 시끄럽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입장하기 전에 유념해야겠다. 신청곡도 받지 않으시고, 1인 1잔은 기본이고, 1잔 당 한 시간 머무를 수 있다는 점, 스페셜 게스트의 플레잉이 있는 날에는 8천 원의 커버 차지가 있다는 점 등 알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규칙이 어렵지는 않지만 좀 까다로운 편이기는 하다. 그리고 마감시간이 좀 당겨지는 날도 종종 있는 듯하다. 우리가 간 날이 금요일 저녁이라 원래는 1시까지 영업인데 그 날은 12시까지만 영업한다고 말씀해주셔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동의하고 들어갔다. 덕분에 적당히 마시고, 차 끊기기 전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을지로 성원식당이나 종로 서울식품은 그냥 동네 식당 정도로 별 감흥이 없었는데 타이거 디스코라는 좋은 곳 알게 돼서 돌아오는 길이 흥겨웠다. 다음엔 좀 더 여유 있게 가서 좋은 음악에 좋은 술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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