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수영구 간판 없는 집
예전에 인터넷에서 보고 우연히 알게 된 뒤 부산 가면 꼭 가보고 싶어서 벼르던 곳이다. 멀지 않은 광안리 스타벅스에서 한두 시간 노트북 작업 좀 하고 나서, 매장 오픈 시간인 오후 5시에 맞춰 천천히 걸어갔다. 20분 정도 소요된다. 매장 이름은 '간판 없는 집'이지만 코너에 위치해 가장 잘 보이는 간판이 있는 집이다. 대중교통으로는 지하철을 이용하면 수영역에서 걸어서 금방이다.
블로그로 간판 없는 집 검색해보면서 몇 가지 팁을 보았는데 가능한 일찍 가서 창가에 앉아서 먹으라고들 한다. 간판 없는 집 닥트는 인테리어 수준으로 고기 구우면서 나오는 연기를 감당하지 못해서 너구리 굴에서 식사하는 기분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인지 항상 통창을 열어놓고 장사하시고, 우리가 갔을 때도 역시 먼저 온 손님들은 다들 창가에 앉아계셨다. 코너에 위치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던 간판 없는 집. 가게는 5시에 오픈하고, 5시 10분에 도착했는데 벌써 두 팀이 식사 중이었다. 수영구 간판 없는 집의 영업시간은 17:00~23:30이고, 매주 일요일은 휴무랍니다.
간판 없는 집 메인 메뉴는 제주산 생목살 단일 메뉴로 가격은 120g당 8천 원이다. 사이드 메뉴로 돼지 껍질과 된장찌개가 있다. 돼지 껍질은 130g당 6천 원이었고, 매운맛/시원 담백한 맛/고소한 맛 세 가지 맛이 있었다. 된장찌개는 소, 중, 대 3 사이즈로 구분되어 있다.
간판 없는 집에서 고기를 주문하는 방법은 다른 고깃집과 사뭇 다르다. 기본 첫 주문은 3인분부터 가능하다.(부산의 대부분 고깃집은 중량과 가격이 낮은 대신 첫 주문 3인분부터 시작한다.) 목살 2~3인분 기준으로 두툼한 한 덩이가 나온다. 5인분을 주문하면 목살 2 덩이가 나오고, 7인분을 주문하면 통 목살 3 덩이가 나오는 식이다. 1인분만 추가 가능한 지는 모르겠는데 두툼하게 먹는 게 맛이라 추가도 2인분 이상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 나와 우리 집 남자는 둘이서 한 근은 거뜬히 먹어서 처음부터 5인분 시킬까 하다가 일단 3인분을 먹어보고 2인분 추가하는 걸로 합의를 봤다.
기본 상차림이다. 상추와 오이, 마늘종, 마늘, 쌈장 그리고 파인애플과 번데기가 나온다. 마늘종과 마늘은 생으로 먹어도 맛있지만 고기와 함께 구워 먹어도 맛있다. 그 흔한 김치 하나 없지만 고기를 먹어보고, 가격표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저렴한 가격에 애피타이저와 디저트까지 챙겨주신다. 기다리면서 번데기 맛이나 보고 있자. 고기 찍어먹는 소스는 두 가지 내주신다. 소금은 따로 내주시지는 않고, 요청하면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간판 없는 집만의 방법으로 먹어보려고 소금은 따로 요청드리지 않았다. 왼쪽 종지에는 대파가 듬뿍, 식초 설탕 소스로 시큼, 달달한 맛이다. 오른쪽 그릇엔 갈빗집에서 많이 나오는 소스로, 간장 소스에 양파가 담겨 나온다. 양파 간장 소스보다는 대파 식초 소스가 더 맘에 들어서 리필해서 먹었다.(사실 다른 먹을 게 없다.)
연탄이 들어있는 화로 바로 들어온다. 후끈후끈하다. 뒤이어 주문한 목살 3인분을 바로 올려주셨다. 고기질 대충 봐도 엄청 좋다. 무슨 소고기 꽃등심도 아닌데 화려한 마블링이 시선을 끈다. 고른 마블링이 있는 가장 맛있는 부분으로 내주셨다. 너무 기대된다.
목살 3인분이면 360g을 한 덩이로 주시기 때문에 두께가 엄청나다. 험난한 구이 과정이 예상되었다. 목살 올리자마자 직원분이 바깥쪽 지방 부분을 떼어주시면서 마지막에 구워 먹으라고 일러주고 가셨다. 이런 건 또 말 잘 듣지요. 수영구 간판 없는 집은 목살 가격이 착한 대신에 고기를 직접 구워먹어야 한다. 연탄불이 약한 편도 아니고, 목살이 워낙 두꺼워서 고기 굽기를 어려워하는 손님들이 꽤 많으실 것 같다.
간판 없는 집 생목살을 맛있게 구워 먹으려면 먼저 목살을 올리고 좀 기다려준다. 한쪽면이 갈색빛으로 지글지글 노릇노릇하게 구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뒤집어 준다. 아쉬운 게 간판 없는 집 연탄은 그릴 위로 빨간 불이 계속 올라와서 고기에 그을음이 묻기 쉽다. 이럴 때는 불이 안 올라오는 쪽으로 고기를 계속 이동해줘야 한다. 불이 계속 올라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굽느라 동시에 사진 찍느라 좀 힘들었다. 목살 양쪽면 둘 다 노릇노릇해지면 가위로 크게 3~4 등분해주고, 자른 고기의 겉면을 또 노릇노릇하게 익혀주는 인고의 시간을 가진다. 기다리는 동안 번데기 먹고 있으면 딱이다.
3~4등분 한 목살의 겉면이 어느 정도 익으면 한입 크기로 듬성듬성 깍둑 모양으로 자른다. 자른 고기는 타지 않게 계속 뒤집어 주면 된다. 엄청난 두께에 비해 가위가 잘 안 들어서 역시 좀 힘들었다. 부산 수영구 간판 없는 집 생목살은 요렇게 두툼하게 잘라줘야 제맛이다. 가운데에 놓고 구우면 빨간불이 계속 올라와서 사이드에 옮겨놓고 구웠다. 고기가 신선하므로 요리조리 굴려가며 70프로 정도 익어 보였을 때 먹으면 육즙 제대로 터지는 맛을 느낄 수 있다. 젓가락으로 고기 눌러봤을 때 너무 물렁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먹으면 된다. 목살은 사실 한 번에 다 구워두면 점점 육즙이 말라서 맛이 없다. 테두리에 반쯤 익은 고기 놓고, 세네 개씩 가운데에 굴려가며 좀 더 익혀서 먹으면 딱 좋다. 적당히 폭신폭신하게 눌려지는 느낌이 들면 맛있게 먹기에 딱 좋은 타이밍이다.
마늘종이랑 마늘도 올려 구워준다. 대선만 마시면 이상하게 다음날 머리 아파서 이날은 참이슬로 한점 한술 하였다. 소주가 술술 들어간다. 별다른 곁들이 반찬 없이도 그 자체로 만족스러운 맛이다. 먹을 게 고기밖에 없으니 금방 금방 사라진다. 고기가 이쯤 남으면 흐름이 끊기지 않게 서둘러 목살 2인분을 추가해준다. 이때 된장찌개랑 공깃밥도 추가로 주문했다. 공깃밥이 즉석에서 지어주시는 거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30분 전에 주문하라고 하셔서 두 번째 판 주문할 때 미리 주문했다. 돼지 껍데기는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뻔한 맛일 테니 궁금하지도 않아서 안 시켰다.
생목살 마블링 때깔 정말 장난이 아니다. 이게 진짜 꽃 목살이다. 동네 사람들 불러서 자랑하고 싶은 마블링이다. 어떻게 이리 좋은 고기만 받아오셨는지 궁금할 정도이다. 이 동네 사람들이 부럽다. 간판 없는 집 우리 동네에 있으면 너무 좋겠다. 기름이 적은 목살은 지방이 이렇게 고루 분포해줘야 제맛이다. 소금까지 빽빽이 뿌려주니까 더 이쁘다. 간판 없는 집 목살이야말로 눈꽃 목살이라고 이름 지어야 한다.
두 번째 판 구우면서 느낌이 왔다. 이번판이 더 잘 구워지겠구나. 한 판 굽고 나니 불도 안정되고, 고기 두께도 안정됐다. 골고루 잘 갖춰진 딱 좋은 느낌이다. 2~3명 가서 어차피 고기 600그램은 먹을 거라면 첨부터 5인분 시켜서 두 덩이로 받는 걸 추천한다. 그러면 300그람씩 균일하게 두 덩이로 받아 구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야 원래 고기 잘 먹어서 고민거리도 아니지만, 먹는 양이 적당한 다른 사람들이 먹어도 곁들여 먹는 찬이 없어서, 그다지 배부를 일이 없어 둘이서 한 근은 금방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주문한 된장찌개 소(2천 원) 사이즈도 나왔다. 고기 다 구워질 시간에 된장찌개가 맞춰서 나와줬다. 타이밍 기가 막히게 잘 시켰다. 공깃밥을 시키면 생김과 간장, 김치도 함께 주신다. 고기 한점 한술이 끝나면 된장찌개와 새롭게 시작하는 한잔 한술. 와, 이럴 수가. 간판 없는 집은 된장찌개 맛집이었다. 기대도 안 했는데 2천 원짜리 후식 된장에 바지락과 두부까지 들어가 주는 센스, 아주 칭찬한다. 기대 없이 먹었는데 너무 맛있다. 된장찌개가 시원해서 소주랑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공깃밥은 메뉴판에 즉석밥이라고 적혀있어서 햇반 같은 레토르트 즉석밥 돌려주시는 줄 알았는데 내가 무지했다. 즉석에서 갓 지어주신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즉석 공깃밥은 추가 주문이 어렵고 30분 전에 주문하라는 거였다. 갓 지은 밥이라 찰지고 너무 맛있었다. 생김을 연탄불에 살짝 구워서 밥 올리고 간장 찍어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2차로 대연동 '미소 오뎅'에 갈 계획이어서 소주 2병에다 목살 5인분, 된장찌개 소, 공깃밥 하나 딱 이 정도로 마쳤는데 다음에 오면 된장찌개는 꼭 큰 사이즈로, 공깃밥은 꼭 인당 하나씩 시켜먹기로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나왔다. 수영구 간판 없는 집은 직접 구워 먹어야 하는데 고기가 워낙 두꺼워서 고기 많이 안 구워 본 사람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후드가 거의 무쓸모라 연기를 많이 마셔서 그런가 나올 때 머리가 좀 아픈 점, 새 옷 입고 가면 안된다는 점 정도의 단점은 조금 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질의 제주 고기를 이 가격에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내가 사는 동네에선 본 적도 없고 들어 본 적도 없어서 굉장히 만족하고 나왔다. 기대도 안 했던 사이드 된장찌개와 즉석밥이 만족감을 더욱 상승시켰다.
우리 동네에 있었으면 진짜 자주 갔을 텐데... 물론 후드 때문에 선선한 봄이나 가을에만 갔을 것 같다. 대폿집 분위기를 싫어하시는 분이라면 별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성비 하나는 으뜸인 곳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근처에 갈 일 있으신 분이라면 들러서 식사해보는 것도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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